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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에 대한 자료

by An educator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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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에 대한 자료

 

 

 

 

 

 

서론

 

 

이번 과제를 통해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에 대해서 알아본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를 알아봄으로 그 당시 구석기인들의 생활과 시대적 의의에 대해서 이해해보고자 한다.

 

 

 

 

본론

 

1.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

 

구석기시대란 인류가 돌을 깨뜨려 도구로 사용하고 사냥이나 물고기잡이, 식물채집을 통해 생활한 문화단계를 말한다. 유적지로는 장기면 석장리의 금강 북안 하안단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이다.

현재 사적 제334호로 지정, 지층은 27개의 층위로 형성되어 있고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층도 11개 층위나 있다는 사실이다. 이후 1990년과 1993년에 다시 구체적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보다 다양한 문화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이 유적의 분명한 성격이 확인되었다. 또한 1990 10 3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34호으로 지정되었다.

구석기인들은 집을 짓고 불을 피우며 살았는데, 여름철에는 화덕을 집밖에 겨울철에는 집 안에 마련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집터 안에서 나온 머리털을 분석한 결과, 지금 인간의 머리카락과 같았음을 알게 되었고 땅바닥과 벽에 홈을 파서 새겨 놓은 고래상과 돌을 떼어내 아가미, , 비늘들을 새겨 만든 물고기상이 나왔다. 이 밖에도 모래 돌을 여러차례 문지르고 그어서 불을 피우는데 썼던 돌도 나왔다. 이 위층에 중석기 시대의 얇은 층이 덮여 있는데 세석인, 잔글개들이 출토되어 중석기시대의 문화가 발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공주 석장리 유적이 밝혀낸 시대적 의의란?

공주 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리의 역사가 단군시대보다 앞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이 땅에 사람이 살아왔다는 의의가 있다. 이곳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선사시대 전기·중기·후기의 다양한 문화층이 형성되었으며 집터, 불땐자리, 사람의 털과 짐승의 털, 불에 탄 곡식낟알 등 주거지가 발견되었고, 긁개·찌르개 등 타제석기 3,000여 점이 발굴 출토되어 선사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가운데 배밑바닥 모양의 석기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동아시아·알래스카·북미대륙으로 사람들이 살았던 과정을 밝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3. 공주 석장리 유적의 지질층

 

지질층위는 27개로 층위는 물에 의한 것이 아닌 육성층에 차례로 빙하기에 쌓인 모난돌층의 문화층과 간빙기에 쌓인 찰흙층이 엇갈려 이루어져 있다.유적의 지층은 층위상으로 맨 아래 바닥 바위층도 바다높이 위로 3m밖에 안 되는 얕은 곳에 있다. 맨 밑 문화층이 시작되는 곳은 바다높이가 매우 얕았던 때이므로 빙하 때였음을 알 수 있다.아래층들은 빙하기에 쌓였고, 간빙기에 이룩된 층은 중기 이후에 나타난다.

전기 구석기층까지는 물에 쓸려가고, 중기층부터는 찰흙층이 쌓였다. 굳은 찰흙층이 더운 기후에 갈라져 틈 사이로 나무뿌리같이 끼어든 흙 층의 아래쪽에는 덥고 메마른 기후로 인해 이루어진 산화철 뿌리테가 있어 셋째 간빙기로 볼 수 있다. 맨 밑층부터 중석기 문화층까지 모두 12개의 문화층이 이루어져 있다.

지질층은 강바닥, 강가, 비탈 쌓임층으로 나뉘며 아래 쌓임층들은 두 개의 다른 간빙기와 제4빙기에 쌓인 것으로 밝혀졌다. 강가 쌓임층의 맨위층에서 나온 나무뿌리테가 따뜻한 기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려주며, 나무숯은 방사선 연대로 5 270년보다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비탈 쌓임층의 1호 집터에서 나온 화덕의 재는 언제의 것임을 알려주었으며, 맨 밑의 강바닥층은 30~50 만년 전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12~14개의 문화층은 아래층으로부터 돌감과 석기 만드는 수법이 발달되어온 과정을 보여준다.

 

 

* 구석기인의 생활상

구석기 유적지를 통해 구석기인들은 집에 불을 피우고 살았고 여름에는 화덕을 집밖에 두었다는것을 알 수 있다. 집터 안에서 나온 머리털을 분석한 결과, 지금 인간의 머리카락과 같았음을 알게 되었고 땅바닥과 벽에 홈을 파서 새겨 놓은 고래상과 돌을 떼어내 아가미, , 비늘들을 새겨 만든 물고기상을 통해 이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둥글 납작한 자갈 돌에 끝으로 선을 그어 그림도 그렸다. 이 밖에도 모래 돌을 여러차례 문지르고 그어서 불을 피우는데 썼던 돌, 이 위층에 중석기시대의 얇은 층이 덮여 있는데 세석인, 세석인핵, 잔새기개출토되어 중석기시대의 문화가 발달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결론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구석기 시대 대표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에 대해서 또 이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시대적인 의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시대가 지나도 유적을 통해 과거로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미래에 증거를 남긴다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이 든다. 조상, 선조들의 삶을 통해 지혜를 보고 또한 세계적으로 어떠한 위상을 지니는지 또한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을 한국어 교원으로서 알릴 때에 어떤 접근이 필수적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역사, 한국사를 통해서 문화와 역사를 진정성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 할 것이다.

 

 

 

 

 

참고문헌

 

공주시 석장리박물관

http://www.sjnmuseum.go.kr

위키백과공주 석장리 유적

https://ko.wikipedia.org/wiki/%EA%B3%B5%EC%A3%BC_%EC%84%9D%EC%9E%A5%EB%A6%AC_%EC%9C%A0%EC%A0%81

전국여행지정보

http://www.tourcoupon.co.kr/view.html?contentid=127237&areaCode=34&sigunguCode=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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